결국은 사람이더라

2017. 03. 08

사람 냄새 폴폴 나는 그런 모임이 그리운 집밥지기

오~랜만입니다! 초대 집밥지기 린입니다.

집밥의 첫 모임을 시작한 창립자이자 전 대표입니다. 재작년 대표직을 내려놓고 이 나라 저 나라 떠돌며 지내고 있어요. 지금은 태국 치앙마이에서 코리빙을 실험하고 있습니다.

2012년 집밥 모임을 시작했어요.

돌이켜 생각해보면 집밥을 시작한 결정적 이유는 ‘사람’ 때문이었어요. 별생각 없이 진행한 모임에 반짝반짝 빛나는 사람들이 찾아와주고 조촐한 모임을 응원해주었어요. “난 이런 사람이에요~ 같이 밥 먹으면서 사는 이야기 해봐요~ 참고로 제가 좋아하는 건…” 특별한 주제나 프로그램도 없는 그런 모임이었죠. 그냥 사람 냄새나는 모임을 하고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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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나만 미친놈이 아니구나.

그때 받았던 응원 메시지를 저장해놓고 꽤나 자주 들여다보면서 히죽히죽 쪼개고 있습니다. 집밥 덕분에 “아 세상에 나만 미친놈이 아니구나. 나 말고도 정말 다양하고 신기한 친구들이 널려있구나~” 라는 것을 알게 되고 신이 났습니다. 성격이 워낙 괴팍하고 시니컬하여 저 스스로를 이상한 놈이라 생각했어요. 그런데 집밥에서 자기 자신만의 색을 칠하면서 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만났어요. 호기심 많고 용감한 사람들, 자기 자신을 꺼내놓고 민낯을 보이는 사람들, 겉은 까칠한 듯하지만 속은 밍숭밍숭한 사람들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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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사람 일이라는 것이 항상 겁내 해피엔딩인 것은 아니더군요.

시간이 흐르면서 집밥이 커지고, 욕심이 생기고, 다른 친구와 비교하고, 뭐 그런 일들이 많아지면서 점점 처음 시작했던 마음과는 다르게 의욕을 잃고 슬금슬금 사람을 피하기 시작했어요. 모임이 끝나고 돌아가는 길, 마음이 텅 비어있는 것 같았어요. 밀려오는 공허함을 이기지 못하고 지하철에서 나도 모르게 1시간 동안 엉엉 울었습니다. 모임을 많이 해보신 분들은 아실 거예요. 어느 순간 기계적으로 사람을 대하고 있는 나 자신이 보이더라고요. 나도 모르게 사람을 대할 때 이상한 가면을 쓰고 있었습니다. 누가 그 가면을 쓰라고 한 것도 아닌데, 나 혼자 그 가면을 쓰고 끙끙거리면서 괴로워했죠. 더는 계속하면 안 되겠구나 싶어 몽땅 내려놓고 떠났어요.

당나귀랑 40분을 걸어가야 물을 떠 올 수 있는 그런 농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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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게 치이는 것 지긋지긋해!” 그래서 사람이 없는 농장에 들어가 살았어요.

자연과 어울려서 염소랑 강아지랑 말이랑 낙타랑 당나귀랑 어울리면서 말이죠. 대나무로 만든 집, 흙을 이겨서 만든 집에 살면서 아침에 해 뜨면 일하고, 해 지면 잠드는 “자연과 함께 살으리랏다.” 했는데, 아! 힘들더군요. 뭐 책이나 영화를 보면 그러한 고행을 거치다 보면 깨달음을 얻고 평화와 지혜를 얻은 눈으로 모든 사람을 포용하게 되고… 블라블라… 상상했지만... 저는 허리를 다쳤고, 처음 보는 피부병이 생겼고, 온갖 염증으로 고생을 했습니다. 안그래도 안 좋은 성격은 더 괴팍해지고 시니컬해집니다. 갓뎀.

발길이 닿는 대로 돌아다녔어요.

그렇게 인도, 베트남, 인도네시아, 태국, 모로코, 독일, 루마니아, 터키… 를 돌았어요. 문득 집에 가고 싶은데, 어디가 집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뭐 ‘디지털 노마드’ 혹은 ‘노마드’ 라는 단어가 유행하는 것 같은데 그런 것 다 모르겠고 계속 유랑해야 하는 삶이 끔찍하더군요. 아름드리나무를 멍하게 바라보는데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저 나무처럼 살고 싶다. 나무처럼 든든하게 자라나고 싶다. 땅처럼 솔직하게 살고 싶다. 꽃처럼 결실을 만들면서 살고 싶다.

그래서 일단 태국 치앙마이에 왔어요. 이곳은 사람들이 정직하고, 날씨가 따뜻하며, 가격도 저렴해 정착해서 살기 좋으니까! 그리고 돌고 돌아 또다시 저는 이곳에서 모임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돌고 돌아 또다시 모임을 시작합니다.

다시 시작. 뚜벅뚜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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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다시 모임이냐?

그러게 말입니다. 이제는 사람이 싫다. 모임도 싫다. 뭐 그랬는데. 돌아 돌아 결국은 사람이더군요. 피식.

그럼 어떤 모임이냐?

달라진 건 그다지 없는 것 같습니다. 사람 냄새 폴폴 나는 모임. 만나서 진득하게 서로 이야기 들어주는 모임. 서로 민낯을 보이고 겁내 솔직해지는 모임. 나이, 학벌, 지역, 직업, 뭐 그런 자질구레한 것들을 훌훌 집어던지고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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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집밥 모임을 찬찬히, 가끔씩, 스리슬쩍 해보려구요. 이제는 이상한 가면 없이, 욕심 없이, 그냥 그렇게.

치앙마이, 나를 위한 3박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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